고국에서 사랑하는 어머님을 만나 뵙고서
- hjpastor
- Mar 21
-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교수
필자가 지난 2023년 10월에 고국을 방문하고 나서 그로부터 약 1년 5개월 만에 다시 고국을 방문하게 되어서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필자와 아내가 지난 3월 6일에 인천공항에 입국하게 되어서 다시 고국을 방문하게 되니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원래는 올해도 10월 경에나 고국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필자의 둘째 아들이 아빠가 교회에서 작년 11월에 은퇴를 하셨으니 하루라도 빨리 고국에 다녀오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비행기표를 지난 3월 5일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였다가 4월 3일 날 다시 미국에 들어오는 것으로 구입하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약 7개월을 앞당겨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올 해 94세가 되시는 필자의 어머님이 김제에 있는 노인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는데 지난 3월 14일 날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 갔다가 전주에서 동생과 함께 김제로 이동해서 어머님을 만나 뵙게 되니 너무나도 감개무량하였다. 필자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4형제들 중에서 장남인 필자를 목사로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결혼을 하신 이후에 자신들의 인생 최고의 목표를 큰 아들을 목사로 만드는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 분들이 바로 필자의 어머니요, 아버지셨다. 큰 아들을 하나님꼐 바치고 나니 하나님이 셋째 아들도 불러 주셔서 동생은 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에 감사할 뿐이다. 어머님과 아버님의 눈물과 땀이 섞인 필사적인 기도로 인하여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의례히 목사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 왔었다. 그래서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아마 3살쯤 되었을 때에 목사 시늉을 내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손님들이 필자의 집으로 방문을 하면 그 손님의 머리 위에다가 손을 얹고서 “주여! 병이 낫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고쳐 주시옵소서!”라고 안수 기도하는 흉내를 내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할 때까지는 장래 희망이 당연히 목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필자의 마음이 변하고 말았었다. 어느 날 부모님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저는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가난하게 사시는 목사가 되는 것이 싫고, 저는 학교 교사가 되어서 교회 장로로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려고 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게 되자, 부모님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너무나도 당혹해 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부모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신다거나 낙담하지 않으시고, 저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계속해서 저의 앞날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다. 이렇게 고등학교 3년 동안을 방황하면서 부모님께 반항을 해오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3년도 2월 어느 날 시골 교회인 김제 황산교회(예장 합동측, 김제노회 소속)에서 서기행 목사님(당시 서울 대성교회 담임목사)을 강사로 모시고 심령 대 부흥회가 있었다. 그 때에 필자도 부모님들과 함께 부흥회에 참석하였었는데, 그 때는 월요일 저녁에 부흥회가 시작이 되면 화요일 새벽기도회부터 낮에는 낮 성경공부, 그리고 저녁 부흥회, 이렇게 집회를 계속하면서 토요일 새벽에나 집회가 끝났었다. 그러니까 모두 14회에 걸쳐서 대 부흥회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첫날 첫 시간부터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필자에게 임하기 시작하였다. 첫날 저녁 부흥회 때에 서 목사님께서 본문 출애굽기 3:1-12절을 가지고,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다. “모세가 불이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는 명령을 들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여러분들 모두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한 교만의 신을 벗어야 하며, 나태의 신을 벗어야 하며, 불순종의 신을 벗어야 하며, 자기 자랑을 하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라고 설교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필자가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서 하나님 앞에 필자의 죄악들을 통회 자복하며, 회개 기도를 하느라 눈물이 범벅이 될 정도였었다. 설교를 다 마치고 나서 새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라는 찬송을 회중들과 함께 부를 때에도 눈물 범벅이 되어서 눈물이 앞을 가리어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 였었다. “1)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2)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 주시네. 3) 날 오라 하심은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함과 평안함 다 주려 함이라. 4) 큰 죄인 복 받아 살 길을 얻었네, 한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5) 그 피가 맘 속에 큰 증거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후렴)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필자는 회중들과 함께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완전히 거꾸러져서 참회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 동안에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목사가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하였던 죄를 회개하였고, 지난 날의 모든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고서 통회 자복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날 그렇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 체험을 하고 나서 금요일 저녁 부흥회를 마치고서, 부모님을 포함하여서 약 15명 정도의 성도들이 밤을 새우면서 난로가에 둘러 앉아서 서로 돌아가면서 간증을 하며, 통성 기도를 드리고서 마지막 토요 새벽기도회를 참석하였었다. 그런데 그 금요일 밤에 필자의 간증할 차례가 되었을 때에 거기에 둘러 앉은 성도님들 앞에서 필자는 이렇게 간증하였다. “저는 그 동안에 부모님의 뜻을 저버리고 목사가 안되고, 다른 길로 가려고 하다가 이번 부흥회 때에 강사 목사님이 증거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고서, 이제부터 저는 신학대학과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다 한 후에 목사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증을 하니, 먼저는 필자의 부모님들이 제일 크게 기뻐하셨고, 거기에 함께 앉아 있던 성도님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면서 크게 환영해 주셨었다.
그 길로 강사 목사님과 함께 토요일날 전주로 해서 서울로 올라가서, 외삼촌 댁에 있으면서 총신대학 입학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게 되어서 여기까지 달려 오게 된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강사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대성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해서 1974년 대학 2학년 때에 서기행 목사님이 필자를 교육전도사로 임명해 주셔서, 그 시점부터 6년 동안을 그 교회에서 시무하면서 교회를 섬기다가 1980년 2월 25일날 예장 합동측 함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고, 그 후로 군목으로 출발하였던 것이 벌써 올해로 45년째 달려오고 있는 셈이다. 교육전도사 때부터 계산을 해 보면 벌써 올해가 교역자 생활 51년째 달려오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어머님의 간절한 서원 기도가 없었다면, 80의 나이였을 때에 2008년도 8월에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님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필자 어떻게 되었을까?
20살의 나이에 교역자의 길에 들어서게 히셔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51년 동안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달려오게 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또한 필자의 부모님과 서기행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지미 카터 전임 대통령처럼 100살의 나이까지 살 것을 목표하고서 앞으로도 약 30여년 동안을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앞을 행하여 달려갈 때에 능력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필자와 함께 하시며, 필자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 올 해 94세이신데, 외할머니만큼 사시려면 앞으로도 3년이나 남으셨고, 지미 카터 만큼 사시려면 앞으로 6년이나 남으셨다. 아무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불러가시는 그 시간까지 필자의 어머님이 더욱 더 건강하시고도 평강 가운데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할렐루야!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