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다. 오늘 필자는 베드로전서 4:12-19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 불시험을 당할 때에”라는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여기 본문 12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이나 연단을 “불시험”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불시험을 얼마든지 당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인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12절에 다시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에게 불시험이 다가올 때에 그것을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연단을 불시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연단하려고”란 말은 옛날 성경에서는 “시련하려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 뜻은 바로 진위를 가리는 것으로 유혹이 아니라 “시험” 즉 “Test”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연단”은 “불시험”이란 말과 동일하게 사용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불시험”이란 말은 바로 문자적으로 보면 “너희 중에 타고 있는 불”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고통스럽게 타는 불”로서, “소돔성을 파괴시킬 때의 불”로도 묘사되고 있으며, 또한 종말에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불로도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불이란 “퓌로세이”로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연단, 즉 시련이 불같이 뜨거운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단”을 잘 통과하게 되면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어서 마침내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연단하거나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결코 이상하게 여기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앞에 다가오는 시련이나 연단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 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련이나 연단을 믿음으로 통과하기만 하면 능력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불시험이나 연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서 그 고난을 통과하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과 영광에 참여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5:3-4절에 보면,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연단을 통과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소망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둘째로, 불시험을 당할 때에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13절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힘이 들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지마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여러 가지의 핍박과 치욕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겪을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첨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광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빌립보서 1:1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네로 황제에 의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는 때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당국에 잡혀 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은혜를 받은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도 된다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빌1:19). 이사야 53장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시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일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복음을 위해서라면 이 땅에서 그 어떠한 고난이나 핍박이나 박해가 온다 할찌라도 능히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신실하게 잘 감수해 가면서, 반드시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세번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있는 자임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인 것이다. 본문 14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핍박이나 박해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거의 전문적인 표현 방식으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마태복음 10:22절에도 보면,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5:20-21절에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사도행전 9:15-16절에 의하면,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본문 14절에 나오는 “치욕을 당하면”이란 말은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이나 능욕을 받는 것”으로, 여기 베드로서에 여러 번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서 고난을 당하고, 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에서 당하신 고난에 함께 동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매우 복된 일이요, 또한 우리는 영광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항상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고난들을 달게 인내함으로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네번째, 우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만일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우리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 본문 15절과 16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악행을 저지르므로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된다면,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어야만 하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 때문에 고난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씀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연단하기 위해서, 불시험을 주실 때에 그것을 결코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불시험이 올 때에 “아, 우리 하나님이 나를 연단해서 더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불시험이로구나!”라고 외치면서 믿음과 인내와 온유함으로 그 시험을 잘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영광을 크게 받으실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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