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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베드로전서 5:4절에 보면,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베드로전서 5:1-4절을 본문으로 “그리스도인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이라는 제목으로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오늘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특별히 장로들에게 권하는 말씀이지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으로 여기고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4절에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영광의 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구 성경에서는 “영광의 면류관”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레서 오늘 제목을 “그리스도인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으로 정하였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권면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3가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베드로는 자기는 “함께 장로된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사도적인 권위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동역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베드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증인이요, 그것을 증거할 책임을 부여 받은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의 장로들만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 성도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임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세번째로, 베드로는 자신을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나타날 영광”이란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다시 오실 때에 주실 영광”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장로들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함께 장로된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으로서, 그리고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 초두에 보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베드로 사도는 요한복음 21:15-17절에서 예수님이 자기 자신에게 부탁하셨던 명령을 다른 장로들에게도 권면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래 “양들”이란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이 말은 “양 무리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도행전 20:28절에 보면,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교회를 표현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였으니, 성도들 즉 양떼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성도들이요, 양떼들이기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양 무리들”임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양떼들을 향해서 어떤 목사들은 “내 새끼” 또는 “내 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엄연히 잘못된 말인 것이다. 양 무리들은 어디까지나 모두 다 “하나님의 양 무리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칠 때에 사명자들은 누구나 다 억지로나 마지 못해서 일하지 않해야 할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움으로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이 우리 주님이 장차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야만 할 것이다. 본문 2절 하반절에 보면,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아 하며,” 이 말씀은 초대교회 당시의 장로직에 일정한 보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 “더러운 이득”이란 말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 재정을 가지고 주식을 투자해서 이익을 보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 재정을 가지고 게임을 해서 이득을 챙기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교회 재정을 가지고 노름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행위 등등의 악의적인 방법으로 교회 재정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기까이 하며”란 말은 “즐거운 뜻으로 하며”라는 뜻으로, 이 말른 헬라어로 “프로뒤모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장로들이나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한다거나, 돈을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서 헌신하는 자세로, 희생적인 자세로, 즐거운 마음으로 신실하게 잘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 주님이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본문 3절에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 구절도 앞절과 마찬가지로 장로나 목회자 또는 성도가 자기의 직임을 감당할 때에 취해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한 권면인 것이다. 여기 “맡은 자들”이란 말은 “클레론”아라는 말인데, 본래 “재비 뽑기”란 말의 “클레로스”에서 나온 단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제비 뽑기”를 하여서 땅을 할당받았던 것에서 유래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클레론”이란 말은 본래 “분배, 몫, 할당” 등으로 헤석할 수 있지마는, 여기서는 레위인에게 할당한 기업처럼, 신성한 은혜에 의한 “몫”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장하는 자세”란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 무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장로의 직임이나 다른 성도들의 직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므로, 장도들이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성도들을 권위로 지배한다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양 무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자세로,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모습으로 양 무리들에게 매사에 모범을 모이면서 양 무리들을 돌보며, 양육하며, 인도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목회자들은 양 무리들에게 “이렇게 하시요”, “저렇게 하시요”라고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는 양 무리들에게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헌금 생활을 하는 데에도 양 무리들에게 본을 보이며, 뿐만 아니라 기도 생활에도 본을 보이며, 경건 생활에도 본을 보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에도 본을 보이며, 가정 생활에도, 사회 생활에도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또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에도 본을 보이고,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본을 보이고, 전도 생활에도 본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슈바이쳐 박사에게 어떤 사람이 성공적인 교육은 어떤 것인가를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에 슈바이쳐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째도 본 보기요, 둘째도 본 보기요, 셋째도 본 보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녀들은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는 대로 산다”고 하는 평범한 진리를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만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자유주의 산학을 비롯해서 인본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 물질 만능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 동성애주의, 또는 이단 주의나 사이비 종파 사상 등을 추호도 본받지 말고, 오직 우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본 받아 가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삶에 우리가 충실할 때에 우리 주님이 구름 타시고 이 땅에 다시 오셨을 때에 우리에게 우리 주님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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