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 (2)
- hjpastor
- Mar 17
- 4 min read
이인승 목사(새 믿음장로교회 원로목사)
코리아 월드 종교 칼럼니스트
남부개혁신학교 명예 교수
오늘 필자는 에베소서 3:11-13절을 중심으로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에 대해서 두 번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울이 일꾼이 된 것은 “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고 고백한 내용을 생각하였다. 또한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첫째 이유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자기에게 하나님이 엄청난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번째로는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 즉 하늘의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오늘은11절-13절까지를 본문으로,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에 대해서 2번째 칼럼을 상고해 보려고 한다.
첫번째로,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1절에 보면,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이 본문 말씀은 바울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임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인 “창세 전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때에 설계하신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여가 본문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에서 “하신 것이라”는 말은 “에포이에셀”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지마는, 본문에서는 “성취하셨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이루셨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 성취를 하셨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절에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실행하셨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목적으로 중재하시는 “선재하신 중재자”, 즉 영어로는 “Pre-Existent Mediator”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 계획과 하나님의 지혜는 이미 영원 전부터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때에 이미 설계하신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성취하신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구속 계획과 하나님의 지혜의 계획들을 계획하시고 설계하셨다 할찌라도, 중재자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성취하지 않으셨더라면, 그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을 터인데, 하나님 아버지가 설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계획들과 하나님의 지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다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그 안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12절에 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의 관심은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선포에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인 자기 자신과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로 바뀐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란 말은 바울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여기에서 “담대함”에 해당하는 헬라어와 “나아감”이란 말의 헬라어는 바로 “담대히 나아감”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들인 것이다. 여기서 “담대함”이란 헬라어로 “파르레시안”이란 말인데,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서로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서, “파르레시안”이란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뢸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우리 아버지이심을 확신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4: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러분의 인생이 답답할 때에, 또는 낙심된 일이 생겼을 때에, 아니면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에,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하게 달려가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부르짖어 간구하시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모두 해결해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7:7절에도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로마서 8:15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는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모두 다 응답하여 주실 줄로 믿는다.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기도하는 문구가 생각나지 아니하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라고만 불러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들을 이미 다 아시고, 다 들어주실 줄로 믿는다.
셋쨔로,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문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이 구절의 말씀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마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낙심치 않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환난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기를 부탁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후에 영광을 받는 반면에, 여기에서는 바울 사도의 고난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영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겪는 환난이나 고통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채워져야 하는 남은 분량의 고난으로 알고서, 기뻐하였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서 1:2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자신이 현재 당하는 고난을 장차 얻게 될 지극히 큰 영광을 에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바울의 현재 고난이 미래의 교회에 미칠 그리스도의 영광에의 참여하는 사실을 깨닫고서, 그들이 낙심하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믿음이 넘쳐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바울이 “곧 영원 전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바울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건과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구하기를 너희를 위한 바울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이것이 바로 너희의 영광이라고 까지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교우들이 참음과 인내함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 해 주실 줄로 확신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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