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늘 시편 34: 1-10절을 본문으로 “복이 있는 신앙”이란 제목을 가지고 본 칼럼을 써 나가려고 한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사라고 한다. 그러니 다윗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얼마나 힘들었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신앙은 불굴의 신앙이요, 변함이 없는 신실하고도 정직한 신앙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시편 34: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윗은 아비멜렉으로부터 쫓겨났을 때에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도 비참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바로 복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절인 9절에 보면,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강력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우리가 시편 34편의 말씀을 묵상하고 음미하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 온다 할찌라도 다윗과 같은 신앙을 본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복이 있는 신앙”을 배우고자 한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이 바로 복이 있는 신앙임을 알 수가 있다. 시편 34: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일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다윗이 고백하고 있다. 여기 “항상 송축함이여”라고 그랬는데, 이 말은 삶의 모든 정황 속에서, 다시 말해서 번성할 때나 실패해서 곤고함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고 기쁠 때에나 슬플 때에도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한다고 하는 뜻이다. 이 구절에서 공개적인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시편 34편을 “선포적인 찬양시”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다윗이 이와 같은 감사의 시를 짓게 되었던 시기는 제목에서도 읽을 수가 있듯이 사울 왕에게서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으나 거기서도 안전하지 못하여서 침을 질질 흘리는 등 미친 체 하여서 그곳을 간신히 빠져 나온 후였던 것이다. 여기 제목에는 “아비멜렉”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사무엘상 21:10-15절에 보면 “가드 왕 아기스”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신앙도 다윗과 같이 그 어떠한 난관에 부딪친다 할짜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는 신앙이 복이 있는 신앙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시편 34: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여기 “자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할랄”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빛내다, 밝히다, 찬양하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적인 우월함이나 교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성도들이 십자가의 의미와 도리를 자랑하겠다고 하는 의지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자랑할 때에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 “곤고한 자들”이란 일차적으로 고통을 통해서 인내를 배운 자들을 의미한다. 이 시편이 기록된 배경을 고려한다면 저자가 의도하였던 이 “곤고한 자”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서 고통을 모르는 자들과 대비가 되는 “사회의 하위 계급”으로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기서 말하는 “곤고한 자들”이란 곤고한 자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 온유한 자, 어린 아이 등등 고통을 당하는 동일한 부류의 사람들로서, 유대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 등과는 대비가 되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 되기를 간절히 기다라는 자들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이 그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한다 할찌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자랑하며, 높이며, 경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신앙이 바로 복이 있는 신앙임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시편 34:3절에 보면,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여기 “공대하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위대하게 만들다”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간주하며 대우하겠다고 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처했었던 것과 유사한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모든 자들이 하나님을 위대한 분으로 여기고 그 분을 대접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시인의 이와 같은 표현은 왜소한 인간의 모습과는 반대인 하나님의 존재를 매우 생동적이고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서술을 통해서 저자는 하나님의 위대성과 광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도 그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찌라도 낙담하지 말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만방에 높이며 또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며, 응답받는 신앙이 바로 복이 있는 신앙임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시편 34:4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이 사울의 박해에 직면하고, 아베멜렉 혹은 아기스 왕의 땅에서 피난처를 찾았던 때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다윗은 자기 자신의 지혜나 어떤 수단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내를 하나님께 구하여 위기를 해결하였던 것이다. 이 시편 저자는 이 사실을 상기함으로 오직 하나님 만이 신뢰의 대상이시며, 그 분만이 기도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기도 하다. 다윗의 두려움의 구체적인 실체는 자신을 해하려고 찾아 다니던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대적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울러 여기서는 그러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대적들 외에도 그들로부터 쫓기고 핍박당하는 외로운 종류의 공포와 망상들, 즉 보이지 않는 그 무엇까지도 함께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모든 두려움에서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도 능력의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두려움에서 능히 건져 주실 줄로 믿는다.
다섯째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이 바로 복이 있는 신앙인 것이다. 본문 5절에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앙망하다”란 말은 바라보다는 뜻이다. 저자 다윗은 여기서 관심을 자신에게로부터 갑자기 자기와 동일한 운명에 처한 동료들에게 돌리면서 그 당시 그들이 근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광채를 내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하프”란 말인데, “함께 모여 들다”, “모이다”, “빛나게 되다”라는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문맥을 고려하여 볼 때에 “빛나게 되다”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러므로 빛이 나도록 한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수동태의 “광채를 내었으니” 또는 “광채를 입었으니”라는 개역 개정 성경 또는 개역 성경의 번역은 무척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에 다윗과 동일한 운명에 처한 그의 추종자들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그 마음의 검은 그림자가 다 사라지고, 그래서 그 사실이 그들의 얼굴 빛을 훤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늘도 우리들이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의 얼굴 빛이 광채를 내게 되며, 부끄럽지 아니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여섯번째로, 하나님깨 부르짖어서 우리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받는 신앙이 바로 복이 있는 신앙인 것이다. 본문 6절에 “그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대적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은 매우 곤고하고, 매우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건져 주신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늘도 우리들의 삶이 매우 곤고하고,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그 능력의 하나님이 그 기도를 다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며 구원해 주실 줄로 믿는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복이 있는 신앙”으로 무장하여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멘, 헬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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