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에서 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가장 중요시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일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상 15:22-23절에도 보면 “사무엘이이르되여호와께서번제와다른제사를그의목소리를청종하는것을좋아하심같이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제사보다낫고듣는것이숫양의기름보다나으니, 이는거역하는것은점치는죄와같고완고한것은사신우상에게절하는죄와같음이라. 욍이여호와의말씀을버렸으므로여호와께서도왕을버려왕이되지못하게하셨나이다하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면 아말렉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을 다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 주고, 아말렉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빼았았던 양과 소들 중에서 살지고 기름진 것들은 다 살려 두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하게 되므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결국에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세 아들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음을 맛보게 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사울과는 반대로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은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의 사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글을 써 나가려고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의 사람을 원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명기 28장은 축복장이기도 하지마는 저주장이기도 하다. 신명기 28:1-14절까지의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따르는 축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네가네하나님여호와의말씀을삼가듣고내가오늘네게명령하는그의모든명령을지켜행하면네하나님여호와께서너를세계모든민족위에뛰어나게하실것이라. 네가네하나님여호와의말씀을청종하면이모든복이네게임하여네게이르리니”(신28:1-2). 그런데 신명기 28:15-68절까지의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네가만일네하나님여호와의말씀을순종하지아니하여내가오늘네게명령하는그의모든명령과규레를지켜행하지아니하면, 이모든저주가네게임하며네게이를것이니, 네가성읍에서도저주를받으며, 들에서도저주를받을것이요———-네몸의소생과네토지의소산과네소와양의새끼가저주를받을것이며, 네가들어와도저주를받고, 나가도저주를받으리라”(신28:15-19).
창세기 22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게 되어서 그가 복을 받게 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에서 어떻게 합격을 하게 되었던 것인가?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시험하시려고 “네아들네사랑하는독자이삭을데리고모리아땅으로가서내가네게일러준한산거기서그를번제로드리라”(창22:1-2)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그대로 전적으로 순종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얼마나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그 어떤 이유를 달거나 그 어떠한 핑계를 대지 아니하고 그대로 순종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순종도 바로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이제라도 다시 살기 위해서는 초대교회 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청종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우리 한국 교회가 다시 새롭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미적거린다거나 연기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여서 이삭과 함께 떠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창세기 2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아침에일찍이일어나나귀에안장을지우고두종과그의아들이삭을데리고번제에쓸나무를쪼개어가지고떠나하나님이자기에게일러주신곳으로가더니”.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천사들이 그렇게도 재촉하고 다급하게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라고 명령을 하였어도, 지체하면서 머뭇거리자 천사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던 사실을 알 수가 있다(창세기 19:15-16). 그런데 롯의 삼촌이었던 아브라함은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하였던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지체하게 될 때에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빠질 확률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즉시로, 지체함이 없이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아브라함이 금방 순종의 일들이 끝나고 만 것이 아니라 무려 삼일 길이나 걸어 가면서도 변함없이 순종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창세기 22:4절에 보면 “제삼일에아브라함이눈을들어그곳을멀리바라본지라.” 아브라함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걸어 가면서 여러 가지의 갈등과 유혹과 시험들이 왜 없었겠는가? 100세에 겨우 얻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인데 이 아들을 번제로 불에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다니!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너무 하시지 않는가? 등등의 많은 생각들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갈등이나 유혹들에 대해서 전혀 내색하지 아나히고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수하게 순종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우리의 순종도 바로 이와 같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째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잡아서 드릴 때에 걸림돌이 될만한 내용들을 미연에 완전히 방지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창세기 22: 5절에 보면, “이에아브라함이종들에게이르되너희는나귀와함께여기서기다리라. 내가아이와함께저기가서예배하고, 우리가너희에게로돌아오리라하고.” 만일 아브라함이 두 종들을 산 아래에 두고 가지 아니하고 그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더라면 아브라함이 이삭의 몸을 결박해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는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아마도 두 종들은 아브라함이 노망이 들어서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서 죽이려는 줄로 알고서 순간적으로 아브라함을 밀쳐 버리고 이삭을 데리고 도망을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에 방해가 될 만한 사항들을 미연에 모두 방지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자세로 철저히 순종하려고 방해가 될만한 것들을 미리 제거하여서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해야만 할 것이다.
다섯 번째로는 아브라함이 이삭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면서 “번제할어린양은어디있나이까?” 라는 이삭의 질문을 받았을 때에 “내아들아번제할어린양은하나님이자기를위하여친히준비하시리라”(창 22:7-8)고 믿음으로 대답해 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결박하고 그를 제단으로 쌓은 나무 위에 올려 놓고서 실제로 칼로 죽이기 위해서 칼을 들기까지 하였었지마는, 그는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이삭에게도 대답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과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대답한 것처럼 하나님은 번제를 위하여 이삭 대신에 한 숫양을 미리 준비시켜 주셨던 것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며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들을 진행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신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내가나를가리켜맹세하노니네가이같이행하여네아들네독자도아끼지아니하였은즉내가네게복을주고, 네씨가크게번성하여하늘의별과같고, 바닷가의모래와같게하리니, 네씨가그대적의성문을차지하리라. 또네씨로말미암아천하만민이복을받으리니, 네가나의말을준행하였음이니라하셨다하니라”(창22: 16-19).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의 사람들이 되어서 모두가 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들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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