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에 보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던 욥이 자기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자기 모든 자녀들을 다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내가모태에서알몸으로나왔사온즉또한알몸으로그리로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여호와시요, 거두신이도여호와시오니여호와의이름이찬송을받으실지니이다”(욥기 1:21)라고 고백을 하면서 “이모든일에욥이범죄하지아니하고하나님을향하여원망하지아니”(욥기 1:22)하였던 것이다. 또한 욥기 2장에 보면 사탄이 욥을 시샘하면서 “이제주의손을펴서그의뼈와살을치소서. 그리하시면틀림없이주를향하여욕하지않겠나이까”라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므로 사탄이 허락을 받았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여호와께서사탄에게이르시되내가그를네손에맡기노라. 다만그의생명은해하지말지니라”(욥기 2:6)는 허락을 받은 후에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함으로 욥이 괴로움 속에서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자기 몸을 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에 그의 아내는 “당신이그래도자기의온전함을굳게지키느냐, 하나님을욕하고죽으라”(욥기2:9)고 악평을 하면서 욥을 저주하였지마는 욥은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켰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대의말이한어리석은여자의말같도다. 우리가하나님의복을받았은즉화도받지아니하겠느냐” 라고 고백을 하면서 “ 이모든일에욥이입술로범죄하지아니하였던”(욥기 2:10)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신앙이 철저하였던 욥,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온전하고정직하여하나님을경외하며악에서떠난자가세상에없느니라”(욥기 2:3)고 사탄 앞에서도 칭찬할 정도로 극찬을 받았던 욥, 이 욥이 욥기서 3장에 가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욥이 1장과 2장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입술로 범죄하지 아나히였지마는 욥기서 3장에 와서는 그가 자신의 모습을 탄식하는 모습을 알 수가 있다. 그는 “내가난날이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배었다하던그밤도그러하였더라면, 그날이캄캄하였더라면하나님이위에서돌아보지않으셨더라면빛도그날을비추지않았더라면, 어둠과죽음의그늘이그날을자기의것이라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그위에덮였더라면, 흑암이그날을덮었더라면, 그밤이캄캄한어둠에잡혔더라면, 해의날수와달의수에들지않았더라면그밤에자식을배지못하였더라면, 그밤에 즐거운소리가나지않았더라면, 날을저주하는자들곧리워야단을격동시키기에익숙한자들이그밤을저주하였더라면, 그밤에새벽별들이어두웠더라면, 그밤이광명을바랄지라도얻지못하고동틈을보지못하였더라면좋았을것을”(욥기 3:3-9)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들을 저주하며,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신앙이 그렇게도 훌륭하고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도 칭찬할 정도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의 삶을 살았던 욥이라 할찌라도,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온 몸, 즉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자신의 상처 부위들을 긁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던 욥이라 할찌라도, 욥기 3장에 와서는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탄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칼빈주의 교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교리인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를 주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 보면, “의인은없나니하나도없으며깨닫는자도없고하나님을찾는자도없고, 다치우쳐함께무익하게되고선을행하는자는없나니하나도없도다. 그들의목구명은열린무덤이요그혀로는속임을일삼으며, 그입술에는독사의독이있고, 그입에는저주와악독이가득하고, 그발은피흘리는데빠른지라. 파멸과고생이그길에있어평강의길을알지못하고, 그들의눈앞에하나님을두려워함이없느니라”(롬 3:10-18)는 말씀처럼,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자들인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히 명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렇게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이렇게 타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욥도 역시 별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레서 욥은 자신을 저주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내가태에서죽어나오지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내어머니가해산할때에내가숨지지않았던가, 어찌하여무릎이나를받았던가, 어찌하여내가젖을빨았던가, 그렇지아니하였던들이제는내가평안히누워자고쉬었을것이니, 자기를위하여폐허를일으킨세상임금들과모사들과함께있었을것이요, 혹시금을가지며, 은으로집을채운고관들과함께있었을것이며, 또는낙테되어땅에묻힌아이처럼나는존재하지않았겠고, 빛을보지못한아이들같았을것이라.”(욥기 3:11-16). 욥은 분명히 자신이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뜻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을 저주한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 욥은 계속해서 자기를 저주하면서 “거기서는악한자가소요를그치며, 거기서는피곤한자가쉼을얻으며, 거기서는갇힌자가다함께평안히있어감독자의호통소리를듣지아니하며, 거기서는작은자와큰자가함께있고, 종이상전에게서놓이느니라”(욥기 3:17-19)고 말하면서 자기가 차라리 저 나라에 가 있있다면 이런 비참한 일들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면서 자신을 후회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어찌하여고난당하는자에게빛을주셨으며, 마음이아픈자에게생명을주셨는고, 이러한자는죽기를바라도오지아니하니, 땅을파고숨긴보배를찾음보다죽음을구하는것을더하다가, 무덤을찾아얻으면심히기뻐하고즐거워하나니, 하나님에게둘러싸여길이아득한사람에게어찌하여빛을주셨는고, 나는음식앞에서도탄식이나며, 내가앓는소리는물이쏟아지는소리같구나. 두려워하는그것이내게임하고내가무서워하는그것이내몸에미쳤구나”(욥기 3:20-25). 이렇게 욥이 자신의 생밀을 저주하고,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면서,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원망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들이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나에게는평온도없고, 안일도없고, 휴식도없고, 다만불안만이있구나”(욥기 3:26). 결국 욥이 이렇게 저주하며 원망하였던 이유는 바로 그에게 평온도 없고, 안일함도 없고, 휴식도 없고, 불안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저주하였던 욥, 이렇게 원망하며 불평하였던 욥이었지마는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이런 훌륭한 고백을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내가가는길을그가아시나니, 그가나를단련하신후에는내가순금같이되어나오리라. 내발이그의걸음을바로따랐으며, 내가그의길을지켜치우치지아니하였고, 내가그의입술의명령을어기지아니하고, 정한음식보다그의입의말씀을귀히여겼도다. 그의뜻이일정하시니누가능히돌이키랴, 그의마음에하고자하시는것이면, 그것을행하시나니, 그런즉내게작정하신것을이루실것이라. 이런일이그에게많이있느니라.”(욥기 3:10-14). “그러므로내가그앞에서떨떡지각을얻어그를두려워하리라. 하나님이나의마음을약하게하시며, 전능자가나를두렵게하셨나니, 이는내가두려워하는것이어둠때문이나흑암이내얼굴을가렸기때문이아니로다.”(욥기 23:15-17). 욥이 하나님의 단련을 받은 이후에는 그가 순금같이 되어 나올것이라고 하는 이 고백은 너무나도 훌륭한 신앙 고백적인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였다 할찌라도 또 다시 자신의 신앙을 찾아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욥의 강하고도 순수한 신앙심을 우리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욥의 인내와 욥이 받은 갑절의 복>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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