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서 가장 마지막으로 옥중에서 썼던 편지가 바로 “디모데후서”이다. 디모데후서 4:6–8절에 보면 “전제와같이내가벌써부어지고나의떠날시각이가까웠도다. 나는선한싸움을싸우고나의달려갈길을마치고믿음을지켰으니이제후로는나를위하여의의면류관이예비되었으므로주곧의로우신재판장이그날에내게주실것이며, 내게만아니라주의나타나심을사모하는모든자에게도니라.” 바울이 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하던 때는 바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상태에 있었다. 바울은 두 차례에 걸쳐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었는데, 첫번째 투옥된 연대는 주후 61-63년 경이었고, 두번째는 주후 66-67년 경이었는데, 바울은 주후 67년 경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가 네로 황제에 의해서 처형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제2차 투옥 기간 중에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인 것이다. 동일한 옥중 서신인 빌립보서나 빌레몬서에는 그의 석방에 대한 바울의 기대가 표출이 되어 있으나 이 서신에서는 그러한 기대가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자신이 순교 당할 것을 미리 알고서 위 내용들을 디모데목사에게 기록하였던 것이다.
위 구절에서 “나의 떠날 시각”이란 바울 자신의 생명이 이 땅에서 끝나는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죽음이 시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이제 순교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첫째로, “나는선한싸움을싸워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말은 전장에서 병사들이 싸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레슬링이나 권투와 같은 운동 경기를 말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운동 경기는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풍물이었으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선한 싸움, 즉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사탄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고서 싸우고 있는데,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줄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서서 진리로 허리 띠를 띠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가슴에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므로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있다. 위의 여섯 가지 무기로 무장을 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저히 무장하고서 사탄과의 선한 싸움, 불의와 죄악과 부정과의 선한 싸움, 즉 영적 전쟁을 치루게 될 때에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줄로 믿는다.
둘째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마쳐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달려갈 길”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로몬”이란 마라톤 경기에서 정해진 경주 코오스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을 비유하는 말로써 바울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면서 살아온 전생애를 상징하는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계속해서 복음 전도자로서 살아 오다가, 마지막 순교를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복음 증거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행전 20:24절에는 바울의 사명관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내가달려갈길과주예수께받은사명곧하나님의은혜의복음을증언하는일을마치려함에는나의생명조차조금도귀한것으로여기지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면서, 중간에 조금이라도 포기한다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달려가겠다고 하는 자신의 굳은 각오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백대로 그는 그대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부름을 받아 간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도 바로 바울과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셍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분투하며 매진해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지켰으니”에 대한 해석을 보면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달리기 선수들이 경기 규칙을 지켰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을 지켰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청지기로서 악조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의 견해들 중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후대에까지 남겨 주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와 같은 우리의 순수한 믿음을 물려 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 믿음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대한 확신이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치매에 걸린다 할찌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큼은 배반한다거나 부인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3년째 펜데믹 전염병 시대로 인하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할찌라도,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 앞에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사탄과 죄악과 불의와의 선한 싸움을 지속적으로 싸워 나가며, 우리의 달려갈 길 즉 우리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을 지속해 나가면서, 끝까지 우리의 순수한 믿음을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믿음이란 바로 앞에서도 말한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대한 믿음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땅에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 때문에 순교를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랜 세월 동안 34년 이나 전국 노래 자랑의 사회를 맡았던 송해 씨처럼 95세에 생애를 마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젊은 시절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일찍이 가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찌하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흙에서 왔으니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히브리서 9:27). 그러나 우리 주님이 재림 나팔 소리와 함께 이 땅에 재림하여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주로 오셔서 우리 모두가 다 부활체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새롭게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예수 믿지 않던 사람들은 지옥으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면서, 또한 우리에게 준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바울처럼 지속적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일에, 우리의 사명을 온전히 다 감당하는 일에, 또한 우리의 순수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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